멀쩡한 내 계좌가 갑자기 정지된다면 보이스피싱을 의심하자

하보니

자영업자 A씨는 거래은행으로부터 계좌가 통신사기피해환급법에 따라 지급 정지 됐다는 안내 문자를 받았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이라고 생각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데 실제로 계좌가 동결된 것을 확인했다. 사업자 통장에 출처를 알 수 없는 15만원이 입금돼 있는 것이 문제였다. 해당 금액이 들어온 이후 사업자 통장과 개인통장이 모두 지급 정지가 됐다. 현재 A씨는 출금을 아예 할 수 없다. A씨는 거래 은행으로부터 '통장협박 피해를 입은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는 A씨의 통장을 지급 정지하게 만든 '통장 협박'이란 무엇일까. '보이스피싱'이라 불리는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구제를 위해 우리나라는 2011년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을 제정했다. 피해자나 수사기관이 금융회사에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신청을 하거나 지급 정지 요청을 하는 경우 금융회사가 범죄에 사용된 계좌를 동결하도록 만든 제도다.

보이스피싱 구제책 역이용한 '신중 사기‘ 계좌 정보 노출 안 되도록 관리 잘해야...

통장 협박은 이런 법률과 제도를 악용한 새로운 범죄 형태다. 우선 타인 계좌에 임의로 금전을 입금한다. 이후 보이스피싱을 당했다고 금융회사에 허위 신고, 계좌를 지급 정지시킨다. 이후 계좌 주인에게 지급 정지를 해제해주겠다며 돈을 요구하는 신종 협박 범죄다. 특히 계좌번호와 연락처가 공개된 자영업자가 주요 타깃이다. 법인은 본인 명의 계좌로 통장 협박을 하 면 검거될 수 있으므로 주로 타인 명의 계좌를 도용해 돈을 보낸다.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 절차에 따르면 계좌의 지급 정지 이후 해제까지는 대략 통상 3개월이 걸린다.

협박범들은 지급 정지 해제에 3개월 이상 소요된다는 점을 악용한다. 자신들에게 돈을 보내면 속히 지급 정지를 해제해주겠다고 협박하는 방식이다. 당장 계좌 동결 해제가 급한 피해자 처지를 악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 명의 계좌를 이용하기 때문에 피해자가 범인에게 돈을 보내더라도 범인은 지급 정지 해제를 할 수가 없다. 이용당한 타인 명의 계좌 소유자가 지급정지를 해제해달라고 해야 하는데, 이때 해당 타인 역시 보이스피싱 피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통장 협박 피해자와의 연락을 꺼리기 일쑤다.

통장 협박 피해자들은 뜻하지 않게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오해도 받는다. 보이스피싱 범죄조직은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에게 소액의 돈을 계약금 등 명목으로 따로 떼야 한다며 통장 협박 피해자의 계좌로 돈을 입금하도록 유도한다. 피해자들은 범죄조직에 속아 소액의 10만~20만원의 금액을 보낸다.

이후 범죄 사실이 드러나면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통장 협박 피해자를 보이스피싱 공범으로 생각하게 된다. 일종의 계좌 공여자로 생각 한다. 억울한 통장 협박 피해자가 보이스피싱 피해자에게 금액을 돌려주려고 해도 보이스피싱 피해자는 통장 협박 피해자와의 연락을 꺼리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통장 협박 범죄에서는 통장 협박 피해자뿐 아니라 보이스피싱 피해자와 같이 다수의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한다.

신종 보이스피싱과 협박이 결합된 범죄를 대응하기 위해 금융회사가 사기 이용 계좌(통장 협박 피해자 계좌)가 피해금 취득에 이용된 계좌가 아니라고 판단하면, 분쟁 소지가 있는 금액만 지급 정지(일부 지급 정지)를 허용하는 내용의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국회에 제출돼 있다. 다만 아직 개정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통장 협박의 억울한 선의의 피해자가 계속 나타나고 있지만 뚜렷한 보완책이 나오지는 않고 있다. 당장은 자기 자신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개인 정보보호에 힘쓰는 게 최선이다.